상춘곡
1행-홍진(紅塵)에 뭇친 분네 이내 생애 엇더한고.
속세에 묻혀 사는 사람들아, 이 나의 삶이 어떠한가?
2행-녯 사람 풍류를 미칠가 못 미칠까.
옛 사람의 풍류를 따르겠는가, 못 따를까
3행-천지간(天地間) 남자 몸이 날 만한 이 하건마는,
세상의 남자로 태어난 몸으로 나만한 사람이 많지마는
4행-산림(山林)에 뭇쳐 이셔 지락(至樂)을 마랄 것가.
산림에 묻혀 있는 지극한 즐거움을 모른단 말인가
5행-수간모옥(數間茅屋)을 벽계수(碧溪水) 앏픠 두고
초가삼간을 맑은 시냇가 앞에 지어 놓고
6행-송죽(松竹) 울울리(鬱鬱裏)예 풍월주인(風月主人)되여셔라.
소나무와 대나무가 울창한 숲 속에서 자연을 즐기는 주인이 되어 있도다.
7행-엊그제 겨을 지나 새 봄이 도라오니
엊그제 겨울 지나 새봄이 돌아오니
8행-도화행화(桃花杏花)는 석양리(夕陽裏)예 퓌여 잇고,
복숭아꽃과 살구꽃은 석양 속에 피어 있고
9행-녹양방초(綠楊芳草)는 세우중(細雨中)에 프르도다.
푸른 버드나무와 향기로운 풀은 가랑비가 내리는 가운데 푸르도다.
10행-칼로 말아낸가, 붓으로 그려 낸가,
칼로 잘라냈는가? 붓으로 그려내었는가?
11행-조화신공(造化神功)이 물물(物物)마다 헌사롭다.
조물주의 신통한 재주가 사물마다 야단스럽구나.
12행-수풀에 우는 새는 춘기(春氣)를 못내 계워 소리마다 교태(嬌態)로다.
숲 속에 우는 새는 봄기운을 끝내 이기지 못해 소리마다 교태를 부리는 모습이로다.
13행-물아일체(物我一體)어니, 흥(興)이에 다를소냐.
물아일체이거늘, 흥이야 다르겠는가
14행-시비(柴扉)예 거러 보고, 정자(亭子)애 안자 보니,
사립문 주변을 걸어보기도 하고, 정자에 앉아 보기도 하니
15행-소요음영(逍遙吟詠)하야, 산일(山日)이 적적(寂寂)한데,
이리저리 거닐며 나직이 시를 읊조려 보며, 산 속의 하루하루가 적적한데
16행-한중진미(閑中眞味)를 알 니 업시 호재로다.
한가로움 속의 참된 즐거움을 아는 이 없이 나 혼자로구나.
17행-이바 니웃드라, 산수(山水) 구경 가쟈스라.
여보게 이웃 사람들아, 산수 구경이나 가자꾸나.
18행-답청(踏靑)으란 오늘 하고, 욕기(浴沂)란 내일하새.
풀을 밟는 것은 오늘하고, 목욕하는 일은 내일 하세.
19행-침에 채산(採山)하고, 나조해 조수(釣水) 하새.
아침에는 산에서 나물을 캐고, 저녁 때에는 낚시하세.
20행-갓 괴여 닉은 술을 갈건(葛巾)으로 밧타 노코,
이제 막 다 쪄서 익은 술을 칡뿌리로 만든 두건으로 걸러 놓고
21행-곳나모 가지 것거 수 노코 먹으리라.
꽃나무 가지 꺾어서 잔 수를 세며 먹으리라.
22행-화풍(和風)이 건듯 부러 녹수(綠水)를 건너오니,
화창한 봄바람이 문득 불어 푸른 물결을 건너오니
23행-청향(淸香)은 잔에 지고, 낙홍(落紅)은 옷새 진다.
맑은 향기는 술잔에 가득히 담기고, 붉은 꽃잎은 옷에 떨어진다.
24행-준중(樽中)이 뷔엿거든 날다려 알외여라.
술동이가 비었거든 나에게 알리어라.
25행-소동(小童) 아해다려 주가(酒家)에 술을 믈어,
아이를 시켜 술집에 술이 있는지를 물어서
26행-얼운은 막대 집고, 아해는 술을 메고
어른은 지팡이를 짚고 아이는 술동이를 메고
27행-미음완보(微吟緩步)하여 시냇가의 호자 안자,
나직이 읊조리며 천천히 걸어서 시냇가에 혼자 앉아
28행-명사(明沙) 조한 믈에 잔 시어 부어 들고, 청류(淸流)를 굽어 보니,
맑은 모래 위로 흐르는 깨끗한 물에 잔을 씻어 부어 들고, 맑은 시냇물을 굽어보니
29행-떠오나니 도화(桃花)로다.
떠내려 오는 것이 복숭아꽃이로구나.
30행-무릉(武陵)이 갓갑도다, 져 메이 긘 거인고.
무릉도원이 가깝구나, 저 들이 무릉도원인가 ?
31행-송간(松間) 세로(細路)에 두견화를 부치 들고,
소나무 숲 사이로 난 오솔길에서 진달래꽃을 붙들고
32행-봉두(峰頭)에 급피 올나 구름 소긔 안자 보니,
산봉우리 위에 급히 올라 구름 속에 앉아보니
33행-천촌만락(千村萬落)이 곳곳이 버려 잇네.
수많은 촌락이 여기저기 널려 있네.
34행-연하일휘(煙霞日輝)는 금수(錦繡)를 재폇는 듯,
안개와 노을과 빛나는 햇살은 수 놓은 비단을 펼쳐 놓은 듯하구나
35행-엊그제 검은 들이 봄빗도 유여할샤.
엊그제까지 거뭇거뭇하던 들판에 봄빛이 넘쳐 흐르는구나.
36행-공명(功名)도 날 끠우고, 부귀(富貴)도 날 끠우니,
명예와 부귀도 나를 꺼리니
37행-청풍명월(淸風明月) 외예 엇던 벗이 잇사올고.
맑은 바람과 밝은 달 외에 그 어떤 벗이 있겠는가
38행-표누항(簞瓢陋巷)에 흣튼 혜음 아니하네.
누추한 곳에서 가난한 생활을 하면서도 헛된 생각을 아니 하네.
39행-아모타, 백년행락(百年行樂)이 이만한들 엇지하리.
아무튼 한평생 즐겁게 지내는 일이 이만하면 족하지 않겠는가?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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